~2021
 
사건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택지들은 때로는 모호함으로 치부되어버리곤 한다. 이런 애매한 것들은 하나의 시각으로는 붙잡아 둘 수 없기에 은근할 말과 같이 중의적이면서도 시적이다. 사건은 ‘일어남’ 그 자체이기에 전체로, 그리고 한 눈에 펼쳐지는 시각장 속에서 특별하게 매료된 것들로 기억된다. 나는 이처럼 항상 일어나고 있는 ‘상황성’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일때에 무의식적으로 추구되는 모호한 시각적 열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눈으로 보는 것과 관념적인 것 사이의 중간지점을 선택하고 이것을 시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고자 한다. 어떠한 사건을 마주한다는 것, 그리고 본다는 것은 시각적이면서도 동시에 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일어나는 사건들의 일련의 시간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단발적으로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포착하며 사건의 큰 틀을 만들어간다. 이는 시간의 인지와 시각적 형태의 끊어지지 않는 미묘한 관계에 대한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회화의 이상적 평면은 언어와 이미지형태 사이의 관계가 여전히 도래해야 할 ‘시각적 탈형상화’를 예견하는 전환의 공간이어야 함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 거대병렬과 시각적 형태의 결합과는 다른 기존의 재현의 방식을 깨트리는 것이어야 하며, 문장이 가진 연속성의 역량과 이미지가 지닌 단절의 힘이 통일되는 지점을 붙잡아두는 척도를 스스로 구축해야함을 언급한다.


끊임없이 변형되는 사건의 모멘트들의 어떤 모양새를 사로잡고자 하는 욕구의 실체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회화작업은 어떠한 상황을 다양하게 포착한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때로는 사라지고, 잘려나가고, 반복되기도 하면서 무엇인가 일어날 것 만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이전 작업에서는 상황성 자체를 운동과 시간이 느껴지게끔 표현하여 화면 속에서 재현하고자 했다면, 말과 그림이 치환되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상황을 끌고가는 이야기 구조의 힘, 그리고 포착된 이미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중간지대를 찾아내고자 한다.

작가노트 2021